[한국뉴스통신=칼럼] 권소영 =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미인, 아기, 동물 이 세 가지 3B 시장의 중요성은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계속 감소하는 출산률은 앞으로 다가 올 교육시장의 불꽃튀는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코칭을 하면서 받는 질문도 대부분 아이가 있는 분들은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까요?’이거나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를 영재로 키워낼 수 있을지!’이다.

두 가지 질문은 글자대로 해석하면 첫 번째 질문은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하는 것에, 두 번째 질문은 아이에게 공부나 재능에 우수한 교육을 시킬 수 있을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첫 번째 질문한 부모에게 어떤 아이가 잘 키워진 아이인가요? 라고 그들의 목표를 되물어보면 서울대나 연대, 고대를 입학한 아이들로 표상되어 답해진다.

문자대로의 의미가 아닌, 이미 그들은 남들보다 경쟁에서 우수한 아이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영재로 키우는 질문을 한 부모에게 어떤 영재로 키우고자 하냐고 물으면 똑같이 서울대와 연고대를 이야기한다.

아이러니한 이 답은 교육의 표상이나 목표가 대학의 이름이 되어버린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 있어 그러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보다 빠른 성공으로 가는 이정표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저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유전적인 기질과 성격도 다르고 성장환경과 학습방식도 다른 사람들이 획일화된 목표만이 전부인 냥 추구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물어보면 우물쭈물하거나 되려 그럼 우리애만 뒤떨어지게 두냐고 반문하거나 속상해한다.

공부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부모 스스로 정의해 보자! 유치원부터 대학때까지 하는 것이 공부라고 단언한다면 그 부모는 자녀를 교육시킬 자격이 부족한 것이다. 우리가 교육이라는 틀을 만든 것은 고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떠한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널려진 낱개의 현상을 바라보고 원리를 찾고 사고하는 능력을 배우는 것에 목표가 있었다.

그 시대에는 그러기 위해 개인의 심신을 단련했고 음악 등 예술을 즐기고 배웠으며 수학을 통한 사고훈련을 하고 철학을 통한 자신의 생각을 정립했다.

이는 공부하는 단어가 덧셈 곱셈에서 미적분까지가 아니라는 말로 함축된다. 얼마 전 삼성그룹 채용 대변혁에 대해 취업준비생들과 예비 취업준비하려는 대학생들이 대 혼란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신문에 많은 지면을 장식했다.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대학이 목표이었던 학생들에게 사고훈련이 된 사람 그리고 자신의 적성에 맞춘 업무개발 능력이 있는, 바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선발하고자 하는 기업의 인사방향이 이제 궤도에 오른 것 뿐이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당연히 고민해야할 일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하는 고민은 이사람 저 사람의 이야기나 입소문 사례만을 들어서 내 아이에게 적용하려 드는 오류가 생기고 있다.

또, 잘 가르치는 선생님만을 찾아다니는 과외나 학원순례도 당연히 아이를 반쪽만 성장시키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답답하고 힘들다는 부모님들에게 敎在本我(교재본아) 이 한마디를 전한다.

교육은 부모 각자가 바로 본이 되는 것에 있음이다. 멀리서 찾지 마라. 자신의 아이는 부모를 보고 클 뿐이다. 부모가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만 강조하면 아이는 자신을 볼 수 없는 아이로 성장할 뿐이다. 뿌리지 않은 씨앗의 열매를 아이에게서 구하는 헛된 바람에 아이들만 힘들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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