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한국뉴스통신] 강현희 칼럼 = 생활체육이나 스포츠 참여를 다른 말로...‘스포츠와 인연을 맺는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스포츠에 참여하는 것은 ‘직접 참여하는 스포츠’,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스포츠’, ‘보는 스포츠’, ‘읽는 스포츠’, 그리고 자신의 신념과 평가, 철학을 나타내므로 참여하는 ‘성향적 참여’가 있다.

얼마 전 강의 중 대학생들과 잠시 토론하였는데, 주제는 벤투 감독에 관한 이야기였고, OX 퀴즈를 하듯이 벤투 감독을 ‘경질하자’라고 주장하는 쪽과 ‘믿고 가야 한다’라는 쪽으로 갈라치게 하여 잠시나마 의견을 나누어 본 것이다.

지도교수인 나는 벤투 감독을 당장 경질해야 함을 주장하였고, 내 의견에는 소수의 학생 5% 정도가 동의해주었다. 95% 이상의 학생들은 경질을 반대하였고, 자신들의 신념을 자신있게 표출하며, 감독을 중도 경질하는 축구 문화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어필하였다. 즉 한 감독의 축구 전술의 정착과 이식을 위해서는 ‘기다리고 기다려야!’ 한다고 거듭 주장한 것이다.

나를 비롯한 소수의 학생의 주장은 이러하였는데, ‘월드컵에 못 가는 것은 재앙이다.’ ‘이번에는 못 갈 것 같기에 믿을 수 없다.’라는 주장으로 경질을 찬성하였다. 그 당시는 정말 위태위태한 상황이었고, 다양한 축구 미디어, 당시 현장 해설을 한 어떤 위원도 경질 얘기를 꺼낼 정도로 탈락의 위기감이 감싸고 있던 때였다.

그 해설위원은 그 한마디로 인해 자신의 유튜브에서 사과방송까지 할 정도로 큰 논란거리였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이란 원정경기를 기점으로 긍정적인 분위기로 바뀌었고, 나 또한 벤투 감독에게 미안할 정도로 대표팀의 경기력은 인상적이었으며, 벤투 감독의 확고한 시그니처와 전술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당시 유튜브 채널마다 벤투 경질론을 댓글로 담아 나의 신념을 드러냈었고, 수백 개의 ‘좋아요’에 심취해 계속해서 경질을 주장하였다.

이것이 바로 서두에 이야기한 스포츠 참여에서 성향적 참여라고 볼 수 있다. 어찌 되었든 나의 성향은 틀렸음이 증명되었고, 제자들이 옳았다고 인정한다. 그들이 얘기한 기다림의 미학을 마흔 중반을 바라보며 알게 되었으니. 이제라도 감사한 것일까?

사실 성격이 급해, 내가 응원하는 팀이 조금이라도 흔들리거나 플레이가 좋지 못하면 감독을 바꾸면 어떨까? 늘 이런 생각을 조급하게 하는 편이다. 이런 나에게 벤투 감독의 예는 자신의 철학을 믿고 기다리고 인내할 때 얻게 되는 결과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의 그 무엇을 깨닫게 해주었고, 생각의 전환을 통한 새로운 힘을 발견하는 단초가 되었다. 이것을 알게 해 준 것은 20대 학생들과의 논쟁에 있었다.

물론 자신의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서 큰 감동을 안겨준 예는 히딩크를 통해 먼저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그때…. 기다림과 인내의 감동보다는 축구 자체와 극적으로 이겼다는 기쁨에 열광했을 뿐 심오한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축구를 지속해서 좋아했던 나에게 축구안에서 기다림으로 인한 기쁨을 발견하지 못했던 거 같다. 국가대표 경기이든, 좋아하는 클럽팀의 경기이든 간에...

그러기에 이번 벤투 감독이 보여준 예는 한국 축구에 있어 히딩크 이후 기다림의 미학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스포츠는 그 사회를 반영한다.

“감독 경질 논쟁으로 바라본 우리 사회와 나의 삶에 대한 성찰로 기다림의 의미를 살펴본다.”

#기다림의 조건 '믿음'

기다림의 전제 조건은 믿음이다. 그리고 흔들림 없는 자기 마음의 통제에 있다. 20대 제자가 강조하길 “감독을 뽑은 것은 협회인데, 감독을 경질하는 것은 협회라는 집단안에 믿음이라는 신뢰의 덕목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믿음이 있기에 선발하였고, 택하였고, 더 큰 out-put을 기대하였는데, 그 기대를 저버리는 첫 번째 이유가 바로 믿음에 대한 불신이다. 내가 선택한 그 무엇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나에 대한 불신이 원인이다. 내 신념과 철학으로 선택했기에 그 신념을 버리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기다리는 목적의 선명함

목적과 목표가 분명하면 내가 기다리는 이유가 선명해진다.

이봉주 선수는 28일 2년간의 투병 이후 자신의 쾌유를 기원하는 마라톤에서 1.2km 구간을 마지막 주자로 달리며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서 걱정스럽고, 마음도 아프고 했었는데 주변인들의 힘을 통해 다시 태어나 다시 달렸다.”라고 말했다. 2년이나 굽은 몸으로 살아가면서 지금처럼 달릴 수 있다는 믿음과 다른 한편으로 걱정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상황 속에 얼마나 다양한 생각들과 싸워왔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이봉주의 기다림이 주는 의미는? 기다림 끝에 있는 ‘목적 달성’이라는 결과를 향해 나아가도 알 수 없는 불안과 초조함은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럴 때 ‘불안함 뒤에 도사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과 현재의 불안한 사건과 감정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불안한 정서를 던져준 사건 자체만 가져가면 된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최종예선에서 쉽지 않았던 그 경기에 나온 여러 비판과 다양한 정서적 경험은 버리고, 경기에 남은 기록들만 가져가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회복탄력성이고, 위닝멘탈리티다.

#기다리지 못한 결과 '자기반성이 우선'

많은 클럽과 국가들이 감독을 택하고 경질한다. 올해만 해도 K리그에서 F.C서울과 강원F.C는 감독을 교체하였고, 프리미어리그도 중도 탈락한 감독이 여럿이다. 이런 감독들을 선임한 것은 수뇌부인데, 그 과정에 대한 책임과 비판은 오직 감독에게만 향하는 아이러니즘, 그 감독을 택한 그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고, 그들도 함께 책임지는 반응을 기대함이 일반 대중인데, 감독을 비판함으로 끝나는 현실 앞에 ‘자기-반성’의 중요성을 되새겨 본다.

내가 속한 나의 일, 집단의 과제에 혹시라도 실패한 무엇이 있다면 그 실패에 대한 책임에서 내가 자유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그 무엇에 대해, 혹여 중도에 기조를 바꿔야 하는 즉, 기다리지 못한 실패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책임이 어떠한 유형적 형태(예-시말서, 감봉 등)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나 자신을 엄하게 문책하고 채찍질해야 한다. 그럴 때 사람과 조직은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다.

가끔 이것을 자기연민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자기-성숙’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선택에 따른 실패 원인을  '자기-연민', '남탓', '출신탓', '외부 자극 탓' 등에서 찾는다면, 그 사람의 성장과 성숙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글을 마치며

20대와 짧은 논쟁을 통해 기다림이 던져주는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또 지난 주말에는 시간이 많아 여러 드라마를 시청했는데, 그 내용은 대부분 자극적이고, 아주 충동적이며, 기다림과 인내의 열매보다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그런 내용이 많은 편이다.

이러한 사회적 문화 속에서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던져주는 힘. 히딩크가 보여준, 벤투가 보여준, 이봉주가 보여준 기다림의 힘을 스포츠로 예를 들어 살펴보았다.

내 주변에 기다림이 필요한 그 무엇의 요소는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으로 그 의미를 되새기며,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글쓴이 : 강현희 (스포츠교육학 박사/KBS스포츠예술과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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