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들러리로 집어넣어..."

<사진설명>이철규(58)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은 2013년 12월 10일 36년간의 경찰생활을 뒤로하고 명예퇴임을 했다. 이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은 지난 9월 1일자로 가톨릭관동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초빙교수로 임용됐다.
<사진설명>이철규(58)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은 2013년 12월 10일 36년간의 경찰생활을 뒤로하고 명예퇴임을 했다. 이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은 지난 9월 1일자로 가톨릭관동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초빙교수로 임용됐다.
[한국뉴스통신=화제] 연합취재부 = 원주별장 성접대 사건’ 당시 ‘성접대 고위층 리스트’가 돌았다. 그 중 한 명으로 조사를 받았던 이철규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은 무혐의 처분됐다. 그는 “아직도 실제로 접대받은 사람이 누군지, 몸통이 드러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원주별장 성접대 사건’의 동영상 속 인물이 자신이라고 주장한 여성이 자난 7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고소해 수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당시 인터넷에 유포된 이 사건 관련 ‘성접대 고위층 리스트’의 진실을 놓고 또 다른 법정 공방이 한창이다.

먼저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이철규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이 지난해 봄 인터넷상에서 이 명단을 리트위(RT)한 누리꾼 55명을 어휘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으로 고소해 벌금 300만원부터 30만원에 이르는 약식기소 처분(총 2800만원)을 받아냈다. 그러자 이들 가운데 검찰 처분에 불복한 누리꾼 4명이 정식 재판을 청구해 성접대 리스트의 진실을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다.

9월16일 열린 재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선 이철규 전 청장은 기자에게 “현재 이 사건은 검사와 피고인이 뒤바뀐 것 같은 희한한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다”라며 검찰 측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데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누리꾼 측 변론을 맡은 변호인단도 사실상 이철규 전 청장은 원주별장 성접대와 관련이 없다는 점을 수용하고 피고인들이 수사 과정에서 사과한 점등을 들어 재판부에 선처를 구하는 쪽으로 변론을 진행했다.

사건 당시 인터넷에 널리 유포된 성접대 리스트에는 김학의 전 법무차관을 비롯해 검찰, 경찰, 감사원 고위 인사와 국회의원, 민간 병원장, 건설회사 회장 등 10명의 실명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이철규 전 경기청장을 비롯해 경찰 고위 간부 이름이 4명이나 포함돼 있어서 원주별장 성접대 주요 인사가 마치 김학의 전 차관이 아니라 경찰 수뇌부급인 것처럼 알려졌고, 이 때문에 이 리스트의 작성과 유포경위를 두고 뒷말이 많았다.

이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곤욕을 치른 이철규 전 청장은 그동안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해 사건 당사자들을 두루 접촉했는가 하면, 성접대를 강요받은 일부 여성도 면담해 자초지종을 들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리스트에 오른 10명 가운데 실제 성접대 혐의가 높은 이는 김학의 전 법무차관을 포함해 3명 정도였다. 그러면 나머지 7명은 누가 왜 명단에 올려 유포한 것일까? 법정 증언을 마치고 나온 이철규 전 청장을 따로 만나 ‘원주별장 성접대 리스트’ 사건의 전말을 들었다.

이철규란 이름이 성접대 리스트에 들어간 걸 어떻게알게 되었나?

지난해 2월 중순 검찰 출입기자 20여 명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원주별장에 가본 적이 있느냐’ ‘윤중천씨(성접대 제공 의혹을 받는 건설업자)를 잘 아느냐’라고 물어서 처음 알았다. 그 때는 별장 성접대 사건이 불거지기 전이다. 기가 막혔다.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들러리로 집어넣어 초점을 흐리려 한다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의심할 만한 정황이 무엇인가?

SNS를 통해 최초롤 유포된 10명 명단은 누리꾼이 조작해 작성한 것이 아니다. 이 명단은 맨처음 ‘증권가 찌라시’에서 출발했다. 내가 경찰청 정보국장을 지내 그 바닥 정부 생산과 유통 과정을 잘 아는데, 국정원과 검찰의 범죄정보과가 머리를 맞대고 만든 것이라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이렇게 조작된 내용을 검찰청에서 출입기자단에 슬쩍 흘려 취재에 들어가게 함으로써 마치 기정사실인 것처럼 유통되기 시작했다. 검찰은 리스트를 유포한 누리꾼들을 찾아냈어도 최초로 생산한 사람은 못 찾아 냈다고 밝혔다.

조작된 리스트를 흘렸다면, 그 이유가 뭘까?

리스트에 오른 10명 중 4명이 경찰 고위직이다. 이들에게 개별적으로 확인해보니 윤중천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누리꾼들이 ‘카더라’만 가지고 명단을 만들었겠나, 누군가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쏠리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올린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리스트에서 본인 이름을 확인한 뒤 어떤 조치를 취했나?

경찰청 담당 국정원IO(정보관)에게 추궁하니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곧바로 국정원 고위관계자에게 항의했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국정원의 한 강부가 원주별장을 출입했는데, 그것을 가리려고 죄 없는 내 이름을 넣은 것 아니냐, 기자 회견을 열러 폭로하겠다”라고 항의했다. 그 간부는 조용히 처리하자고 나를 달랬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국정원에서는 해당 간부를 슬그머니 내부 정리했다고 들었다.

리스트에 오른 10명에 대한 수사기관이 조사를 한 것으로 아는데.

김학의 전 차관은 조사 불응, ㅂ병원장과 감사원 전 간부 ㅅ씨는 성접대 사실을 시인했다고 들었다. ㅊ국회의원은 내가 물어보니 윤중천과 일면식도 없다고 주장하더라. 고검장 출신 ㅅ씨도 윤중천은 전혀 모르고 윤씨가 몸담은 회사 회장과 같은 성씨로서 대종회장을 맡고 있다는 점 때문에 끼워넣은 것 같다고 했다. ㅈ건설 ㅈ회장도 펄쩍 뛰었다. 수사에서도 그 건설사와 윤중천 간의 거래관계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성접대 동영상을 본 적 있나?

우연한 계기로 봤다.

동영상 속 인물이 김학의 전 법무차관인가?

인간관계상 차마 답변하기 곤란하다. 이제는 솔직히 시인하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누리꾼들의 허위사실 유포 행위에 대한 검찰의 약식 기소가 미흡하다고 보나?

검찰 조사 결과 나는 성접대를 받은 사실이 없다는 점이 드러낫지만 아직도 실제로 접대받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몸통이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았다.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지난해 경찰과 검차르이 수사기록에 다 있다. 검찰 쪽 고위공직자가 그 속에 들어 있는데, 그를 보호하기 위해 엉뚱한 사람을 끼워넣어 흘려서 망신을 주는게 말이 되는가. 우리 국민이 지금 수사기관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다. 피해를 입은 내가 원주별장 성접대 자리에 안 갔다고 아무리 해명해도 안 믿어준다. 왜 이렇게 됐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엄청난 사건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재판에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수 있다고 보나?

검찰이 수사기록을 법정에서 공개해야 한다. 최소한 피해 당사자에게는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검찰에서는 재판부가 요구해도 수사 기록은커녕, 기록 목록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니 피고인들의 처벌을 받아도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승복할 수 있겠는가.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어떤 피해를 당했나?

내 이름이 리트윗되어 떠돌 때 처자식 보기 민망하고 죽고 싶을 만큼 억울했다. 경찰 수뇌부 4명이 한꺼번에 명단에 실리면서 진실을 모르는 많은 국민으로부터 경찰 집단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는 억울한 질타도 받았다. 책임져야 할 사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죄 없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명예를 대신 실추시키는 것을 방치하는 것을 정의가 아니다.

누리꾼 55명의 신상 정보를 불법으로 파악해 고소했다는 의혹 제기가 있다.

전혀 그런 일 없다. 나는 당시 인터넷에 뜨는 ID를 캡처받아 고소했을 뿐이다. 수시시관에서 그 ID를 추적해 신원을 확인하니 55명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리트윗한 누리꾼들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화해할 용의는 없나?

아직까지 약식기소된 피고인 중 단 한 명도 내게 미안하다고 연락해온 사람은 없다. 정식으로 사과를 해온다면 선처해줄 용의도 있다. 그들도 허위 정보를 악의적으로 생산하고 유포한 세력에 의한 피해자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시사인 2014년 9월 27일 판 온라인 기사이며, 해당 기자의 허락하에 게재 합니다>

/ 이 전 청장은 동해 출신으로 북평중·고(24회)를 거쳐 건국대 법학과와 한양대 대학원(행정학)을 졸업했으며, 강원경찰청 차장과 서울경찰청 경무부장, 충북경찰청장, 경찰청 정보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 가톨릭관동대 경찰행정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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