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뉴스통신=칼럼] 이덕균 = 10월로 들어서면서 느끼는 바람, 햇빛, 온도는 9월의 그것과 비교하면 확연하게 달라진다. 더 차갑고, 더 투명하고, 더 깨끗하고, 더 붉은 빛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맘때면 가을빛으로 잘 익은 각종 가을 과일들도 쏟아져 나온다. 5일마다 열리는 춘천 풍물장에도 제철을 만난 과일들로 넘쳐난다. 짙은 붉은 색의 사과, 터질 듯이 보이는 맗간 주황빛 감, 반들반들 빛나는 알밤, 보랏빛 포도송이…참 많기도 하다.

그래도 이 때 가장 대표적인 과일은 사과인 것 같다. 춘천에서도 이제는 사과가 참 많이 나온다. 특히 춘천 유포리는 예전부터 사과농사가 대단위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아내가 몸이 아픈 이후로 사과가 몸에 좋다고 해서 일 년 내내 떨어뜨리지 않고 사과를 사들였다. 그래서인지 제철이 아닐 때 사먹는 사과에 비해 요즘 나오는 싱싱한 햇사과는 보기만 해도 건강해 질 것처럼 보인다.

이 시기에 유포리로 햇사과를 사러 갈 때면 늘 가는 단골 농장이 있다. 이 농장의 농부를 소개 받고난 이후로 햇사과가 나올 때면 당연히 찾아 가는 곳이다. 처음 이 사과밭의 농부를 보았을 때 그는 농부라고 하기에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차라리 예술인이라고 한다면 딱 어울린다.

‘예술가 같다’라는 느낌 그대로 사실 그분은 사과 농사를 짓게 된,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원래 카페를 운영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긴 머리를 한 모습은 마치 옛날 다방 D. J과 같이 멋스럽다.

그의 카페가 나름대로 자리를 잡을 즈음에 자신이 믿었던 친구와 아내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고 한다. 그 일로 심한 충격을 받고 카페를 아내에게 던져주고, 그는 유포리로 들어와 이 과수원을 임대하여 사과농사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그 곳에서 처음 맛을 본 사과 맛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이 분을 소개받기 전에 맛보았던 유포리 사과의 달고 상큼한 맛이 아니라, 사과 특유의 맛은 약하고, 단 맛은 싱겁게 느껴졌다. 사과 몇 알을 먼저 우리에게 맛보여 주며, 자신이 어떻게 이 사과 농사를 지었는지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그가 사과농사를 시작하면서 처음 한 일은 무성한 사과나무의 가지를 과감하게 쳐낸 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좀 비싸기는 하지만 화학비료가 아닌, 유기질 비료와 퇴비를 사용해서, 일 년 동안 사과나무의 열매를 다 따버리고 나무의 힘을 기르는데 만 집중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분이 자신의 사과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던 것은, 사과를 재배할 때 가능한 최소한의 농약만으로 재배하는 저(低) 농약 재배법을 죽어라하고 고수(固守)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재배되어 지는 사과농사의 현실을 심각하게 말해주었다. 이 곳의 많은 농가가 인체에 유해한 농약에 의존하여 사과 농사를 짓는 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과일들이 그렇지만 사과에도 다양한 농약이 살포되어 진다.

진딧물이 많이 덤벼들기 때문에 진딧물과 같은 해충을 잡는 농약은 기본이고, 사과 탄저병과 같은 여러 가지 병을 방지하는 농약, 사과의 빛깔을 내는 농약, 사과를 쉽게 따기 위해 사과나무 잎을 제거하는 농약, 잡초를 제거하기 위한 제초제 그리고 전반적으로 사과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서는 성장호르몬은 물론 심지어는 크기가 반듯하고 광이 나는 것도 약품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병충해에 강한 국광, 홍옥과 같은 재래종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품종으로는 농가에 수지타산(收支打算)을 맞혀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국광과 같은 재래종은 전부 도태시키고, 사과나무를 모조리 ‘후지’라는 일본 나무 모델로 품종 개량하였다.

여기서 문제는 사과나무의 열매에만 집중해서 품종을 개량해 놓고 보니, 사과나무는 병충해에 대한 자체 저항성이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약한 저항성은 농약을 뿌리고, 화학비료를 사용해서 대치하고, 사과나무는 오로지 크고, 붉고 단맛의 사과 알을 어거지로 맺게 하였다.

어쩌면 눈에 보기에 좋고, 화려한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사과도 공장에서 찍어내듯 상품성 있는 물건을 만들어 내려면 농약을 충분히(?)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 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매년 찾아간 단골 사과농장, 매번 그 분을 만날 때 마다 ‘사과 농사 고만지어야 할 것 같다’는 푸념과 함께 깊은 한숨소리를 들었다. 그동안 바지런한 좋은 여자 분도 만나 다시 결혼도 했지만, 지금처럼 사과농사를 지어서는 가정을 꾸려가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자부하는 농사법이 소비자들에게 별로 호감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서 팔리지 않는 사과로 사과즙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주위 농가보다 더 싸게 내아 놓기도 해보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던 것 같다.

가을 날씨를 만끽도 하고, 사과도 살 겸해서 올해도 어김없이 아내와 함께 그 단골 사과밭을 찾아갔다. 그러나 지금쯤은 집 대문 앞 도로에 사과 상자가 잔뜩 쌓여 있어야 하는데, 웬일인지 사과 상자가 보이질 않는다.

대문을 두드려도 안에 인기척이 없다. 사과를 저장도 하고, 선별 작업도 하기위해 작은 마당 한켠에 세워놨던 비닐하우스도 텅 비어있었다. 그가 키우던 커다란 개도 보이질 않는다. 아무도 없다. 집 뒤의 사과나무는 베어 지기도 하고, 제멋대로 방치되어 있다. 4, 5년을 버텨보았지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나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화번호라도 잘 간직해 놓을 걸.

양심대로 살아도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 그저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러운 거짓 상품에 눈이 먼 세상, 이 세상에 대해 그가 느꼈을 그 아픔이 서늘한 가을바람과 함께 다가온다. 그리고 그가 그리워진다.

이 가을의 햇사과를 어디서 사지?
 

저작권자 © 한국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