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뉴스통신=칼럼] 이덕균 = 의암호와 춘천호 그리고 소양호는 춘천을 호반(湖畔)의 도시라고 부르게 할 만큼 이 도시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특별히 의암호 주변은 4대강 사업과 맞물려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가 우아하게 뻗어 있다. 자전거로 호수 주위를 끼고 달릴 수 있는 유락(遊樂) 시설물로는 아마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일 것이다.

거기에다 호수 주위는 낚시할 수 있는 시설물들이 많이 있다. 호수 주변 마다 설치되어 있는 낚시터에서 낚시 대를 걸쳐놓고 한가로이 찌를 바라보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그것을 지켜보는 이마저 한없는 평화로움 속에 빠져 들게 한다.

낚시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은 단지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넓고 깊은 호수 속에서 ‘어떤 물고기가 낚여 올려 올까?’하는 기대감은 그것을 구경하는 나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다. 그리고 마침내 낚시찌에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세차게 찌가 물속으로 들어가면 낚시꾼은 힘차게 낚시 대를 들어 올린다.

낚시 줄 끝을 물고 물속을 이리저리 헤엄치던 물고기가 자신의 몸을 반짝이며 끌려 나온다. 낚시꾼은 놓칠세라 서둘러 물고기를 움켜쥔다. 물 밖으로 나와 낚시꾼의 손에 들어온 물고기는 퍼들쩍 거리다가 어망 속으로 던져진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드라마틱하다.

이런 광경을 볼 때면, 어떤 물고기가 잡혀는 지 궁금해서 낚시꾼의 양해를 얻어 어망을 들여 다 볼 수 있는 일이 종종 있다. 이름을 잘 알 수 없지만 서로 모양새가 다른 물고기를 보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물속의 어망 안에는 살아있는 물고기도 있지만, 벌써 배를 허옇게 드러내고 이미 죽은 물고기들도 있다. 그리고 어망을 물속에서 끌어 올리면, 어망 안에서는 퍼들적 거리는 소리로 아우성이다.

언제부턴가 이런 낚시터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의 의구심이 든다. 대부분 사람들이 물속으로부터 끌어올려져 퍼덕거리다가 죽는 물고기를 구경하는 모습은 재미있어 한다. 그러나 만일 소나 돼지 같은 동물들을 도살하는 장면을 보라고 한다면, 대부분은 구역질을 하며 자리를 도망쳐 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은 동물을 들여다보면서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물고기가 미끼를 물고 낚싯바늘이 주둥이에 깊이 박혀 허우적거리다 질식해 죽어버리는 모습은 늘 흥미롭다.

그 이유가 물고기를 만지면 따뜻하지 않고 차갑기 때문일까? 아니면 부드러운 털 대신 미끈거리는 느낌 때문일까?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거나 신음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식용 동물들의 죽음처럼 처참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분명히 우리는 물고기들에 대해 다른 태도를 가진다.

아마도 개를 목 졸라 죽이는 일이라면 길길이 뛸 사람들도 강변에 낚시 대를 드리우고 앉아 물고기가 날카로운 낚시 바늘에 걸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2002년 와이오밍 주립대학교 라라미 캠퍼스에서 동물학 및 생리학 교수로 있는 James Rose(제임스 로즈) 교수는 “어류학 평론”(Reviews in Fisheries Science)에 기고한 글에서 ‘물고기의 뇌’에 대한 평론을 출간했다. 거기서 그는 물고기도 고통스러운 반응을 하는 신경 시스템이 있기는 하지만 그 반응은 의식과 무관하다는 것이라고 로즈 교수는 말했다. 즉 물고기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란다. 그리고 당연하게 낚시꾼들은 이 결론에 기꺼워했다.

그러나 에든버러 대학교 로슬린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벌의 독과 초산’을 야생 무지개송어의 주둥이에 주사한 결과, 그 물고기가 수조(水槽)의 바닥에 주둥이를 비벼대고, 펄쩍펄쩍 뛰는 듯한 행동을 관찰하였다. 그것은 포유동물들이 고통스러워 할 때 보이는 전형적인 행동으로 ‘물고기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은 물 밖으로 끌려 나와 하찮게 파들짝 거리는 물고기의 생명도 우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지(論旨)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마치 혼자 지고(至高)한 사람처럼 물고기가 고통을 느끼니 안 느끼니 하는 문제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이 호수 속의 피조물인 물고기의 역할이 낚시로 잡혀져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면 우리에게 낚시는 얼마든지 행해질 수 있는 건전한 오락거리다.

그러나 물고기들의 세계에 들어가 보자. 현대 문명의 기기를 통하여 들여다 본 그들의 세상은 얼마나 다양하고, 섬세하고, 조직적인 세계를 이루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는 물고기가 보인 여러 인식능력을 알려 주는데, 그것은 다른 물고기를 인지하고, 먹이를 얻기 위해 다른 물고기와 협력을 하거나, 각자의 성(性)에 주어진 책임을 다하거나, 물고기 집단 내에서 자신의 ‘사회적 계급’ 등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는 그들의 세계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자세가 뒤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와는 정반대로, 가장 현명하다고 하는 우리가 그들의 세계를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있다.

고상한 취미를 가진 낚시꾼들이 지나간 자리를 보라! 부탄가스통, 각종 비닐, 납덩어리, 음식물 찌꺼기, 쓰다 남은 떡밥덩어리, 잘라진 낚시 대, 끊어진 낚시 줄, 음료수깡통, 소주병, 음식물을 조리하기 위해 곳곳에 불을 사용하고 타다 남은 각종 쓰레기 등을 마구 던져버려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그 주위는 서서히 썩어 들어가고 물속의 세계는 점점 죽음의 세계로 변해가고 있다.

물고기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인간들에게 오락거리로 제공하고 받은 대가(代價)가 얼마나 혹독했는지 보여 주는 장면이다.

아마 물고기들은 그들이 잡혀 당하는 고통보다 그들의 위대한 세계가 무자비하게 파괴되어지는 것에 대해 더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세계가 파괴되고 난 후 돌아오게 될 결과에 대해 아무런 인식조차도 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저 안스럽고 절망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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